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거스 히딩크 (문단 편집) === 여자친구 === 히딩크의 가족 관계에 대해서는 2002년 월드컵 당시나 지금이나 알려진게 많지 않다. 일단은 1살 연하의 이니 히딩크와 결혼하여 1969년과 1972년에 각각 미셸 히딩크와 마크 히딩크가 태어났지만, 부인 이니와는 이미 2002 월드컵 이전부터 별거 상태였고 20살 연하의 엘리자베스 피나스와 계속 교제 중이며 2022년 2002 월드컵 20주년 기념 행사에도 히딩크와 같이 방한했다. 그녀는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수리남]] 출신으로, 독일 자동차 브랜드 [[오펠]]에서 근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부인과 이혼하지 않고 별거 중인 상태에서 애인 엘리자베스를 데리고 다니는게 네덜란드를 비롯한 서유럽에서는 그냥 단순한 사생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지만, 유교적 문화가 여전히 지배적인 한국에서는 영 좋지 않은 시각이 강했던 탓에 [[히딩크호]] 출범 초기부터 기자들이 집요하게 정보를 캐내려 했다. 물론 서유럽을 비롯한 서양쪽 문화는 사생활에 대해 굳이 알려고 하는 것 자체가 심각한 결례인데다[* 한국 및 동양권 사람들이 서양쪽에서 흔히 범하는 실수에 속하는게 바로 결혼, 연애, 가족, 자녀에 대한 질문. 아주 가까운 사이일 때 상대방이 먼저 얘기를 해준다면 모를까, 이쪽에서 먼저 "결혼은 했냐", "애인은 있냐" 등의 질문은 매우 큰 결례로 통한다. 왜냐하면 개인주의 문화가 극도로 발달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알려고 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근데 사실 한국도 2010년대 이후에는 개인주의 문화가 우세한지라 이제와서 생각해본다면 격세지감할 일이다. 축구와 관련된 일도 아닌데 기자가 사생활을 집요하게 파낼려고 했다는건 문화의 차이를 넘어 명백한 무례한 행동이다.] 히딩크 본인의 성격부터가 불같기로 유명했던지라[* 사실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비롯한 북서유럽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좀 공격적으로 들리더라도 표현을 직설적이고 솔직하게 하는 편이다. 당장 히딩크와 같은 네덜란드 출신인 [[조 본프레레]] 또한 한국 감독 시절 직설적인 인터뷰로 언론과의 관계가 매우 불편했다.] 엘리자베스와의 관계를 두고 집요하게 질문을 날린 기자들을 향해 "[[사커킥|머리통을 발로 차 버리고 싶다]]"며 불쾌한 감정을 보이기도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프랑스]]와의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s-5.1.1.1|2001컨페더레이션스컵 8개국 본선 8강 조별리그 경기]]와 유럽 전지 훈련에서 [[체코 축구 국가대표팀|체코]]와의 평가전에서 5-0 으로 참패하는 등 2001년 내내 성적 부진 문제가 제기된 와중이었던지라, 엘리자베스를 자주 만나는 것을 두고 리더쉽 문제라는 언론의 문제 제기도 있었다. 하지만 커리어 우먼답게 진중한 성격의 엘리자베스가 히딩크의 불같은 성격을 통제하면서 차츰 히딩크가 언론을 대하는 태도가 부드러워졌고, 2001년 말에는 휴가를 추가로 다녀오는 문제로 [[이용수(축구)|이용수]] 당시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과 히딩크 감독이 언쟁을 벌이며 그만두네 마네 등의 험악한 말까지 오가자 엘리자베스가 히딩크를 진정시킨 뒤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을 설득해서 히딩크가 연말 휴가를 다녀올 수 있게 되는 등의 여러 활약을 해냈다.[* 히딩크가 자서전 '마이 웨이'에서 밝힌 바로는 2001년 말에 크리스마스를 가족들과 보낼 겸해서 2주간의 휴가를 보내고 1월 초에 돌아오는 계획을 세웠으나, 축구협회에서 불허해서 험악해졌다고 한다. 히딩크가 직접 알아낸 불허 사유는 '휴가를 5주나 보내줄 수는 없다'는 것이었는데, 이런 과정을 히딩크와 축구협회 양측 모두의 의견을 들은 엘리자베스가, 히딩크에게 '이용수는 축구협회 직원일 뿐 결정권자가 아니니 그에게 항의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라며 이용수에게 화를 내는 것은 그만두라고 하면서 히딩크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축구 협회 해외 홍보 담당자인 '다이애나 강'이라는 사람을 통해 축구협회를 설득("휴가 기간은 5주가 아닌 2주이며, 그 중 1주는 유럽파 점검을 겸해 감독으로서의 업무를 할 것이다")함으로서, 출발 날짜가 2일 연기되었으나 크리스마스 이전에는 출발할 수 있었다고 한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205302024391|이용수 전 기술위원장의 인터뷰]] 뿐만 아니라 사회 활동에도 관심이 있었던터라, 히딩크를 만나기 위해 한국에 왔을 때 개인적으로 장애인 등의 소외 계층을 지원하는 단체를 찾았고 나중에 히딩크에게 한국에서 자선 활동을 해보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그 결과 탄생한게 바로 히딩크 재단이다.''' [[http://www.hani.co.kr/arti/sports/soccer/124221.html|히딩크의 인터뷰]] 히딩크가 현재까지도 한국에 주기적으로 방문해서 여러 애정을 표시하고 히딩크 재단 활동도 계속되는 것을 보면, 그만큼 엘리자베스가 만만치 않은 인물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히딩크 감독이 2002년 7월, 한국을 떠날때 공항 인터뷰에서 굿바이라고 하지말고 '또보자' 라는 표현인 소 롱(So long)이라고 표현 하라고 조언(!)을 해주었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 인터뷰를 찾아보면 굿바이가 아닌 소롱 이라고 떠나기전 인사를 남겼다.(히딩크 자서전에 자세히 나온다) 이런 식으로 엘리자베스가 히딩크를 통제(?)할 수 있었던 비결은, 엘리자베스가 당시 '분쟁조정' 관련으로 석사 학위 과정을 밟고 있었다. 그야말로 전공 분야 지식을 제대로 써먹을 상황이었던 것. 그리고 엘리자베스는 단순히 히딩크의 여자친구로 끝이 아니라, 대표팀 선수들과도 친분을 쌓아서 차두리가 엘리자베스를 누나라고 불렀다고 한다. 특히 독일어가 유창한 차두리와 남매같이 지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